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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온 편지

우리 딸이 스무살이 되면 내가 이 음성 편지를 병원 측에 배송해 달라고 신신 부탁했단다. 우리딸, 예쁘게 자랐겠지. 엄마는 네가 태어나면서 너의 얼굴도 한번 쓰다듬어 보지 못하고 먼 곳으로 떠났단다.

엄마가 우리 딸 예쁜 발도 씻겨주고 예쁜 옷도 많이 많이 입혀주고 싶었는데…. 그래도 우리 딸 씩씩하게 살아갈 것으로 이 엄마는 믿는다…….」

오늘 우리들의 알바지존 혜주는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모자를 눌러 쓰고는 가방을 둘러메고 새벽에 나와 밤늦은 시간까지 알바를 뛴다.

“까짓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그래 정혜주!. 아무리 힘든 날들도 다지 나가리니. 가자 나의 알바 천국으로”

휘파람을 불며 열여덟 소녀 혜주는 오늘도 제일 먼저 문을 여는 김밥집 알바에서-커피숍-저녁 불고기집-. 카페를 거쳐 생맥주집 알바까지 순례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몸이 파김치가 되는게 일상이지만 늘 씩씩하다.

고3 이지만 진학을 위해 등록금은 물론 셋방 월세, 생활비까지 제 손으로 벌어대야 한다.

「…… 임신 9개월째, 엄마는 너의 태동이 신기하기만 하단다. 너무 궁금해서 산부인과 진찰을 하니 예쁜 딸이라네. 우리 딸 어떻게 생겼을까. 손은 얼마나 쪼그맣고 발은 얼마나 작을까. 오늘 엄마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한달 뒤면 태어날 우리 딸의 배내옷을 사러 나왔단다. 앙징맞은 옷을 쓰다듬어 보고 또 보고 ‘우리 딸 이게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 입을 옷이야. 예쁘지’ 엄마의 뱃속에 있는 너에게 물으니 또 요녀석이 발길질, 그래 그래 됐다됐어.」

씩씩하게 살아가던 혜주가 요즘 심상치가 않다. 명랑소녀 혜주에게도 어김없이 사춘기가 찾아왔다. 모든 것이 짜증스럽고 궁색한 살림살이, 실직자 아버지에게 바락바락 대들기가 일쑤다.

“내 나이가 지금 열여덟살 밖에 안됐다구. 그런데 내가 네군데 다섯군데 허덕허덕 알바를 뛰는 슬픈 청춘인데 아버지란 당신이 날이 날마다 술이나 먹어서 되냐구. 내겐 애초부터 어머니는 없었고 아버지는 있으나마나 차라리 없는 게 홀가분해. 지금 내 인생이 앞이 보이냐구…….”

다리를 뻗쳐놓고 엉엉 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혜주는 변해갔다. 담배를 피우고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을 마시고 ....

아버지는 밤늦게 들어오는 혜주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뺨을 때리는 일이 일과였다.

“야 이 x아. 너나 나나 세상의 쓰레기가 되어갈 바에야 같이 죽자 죽어”

“그래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아버지 자격이 있어. 내 학비를 한번 대줘봤어 쌀을 한포대 사와봤어. 나더러 어떡하라구”

한치도 지지않고 맞서는 혜주의 모습에서 명랑소녀 혜주는 없었다.

“신부전증에 암이 임파선까지 퍼져있는데 출산은 극히 위험합니다. 낙태를 하셔야 산모의 목숨이라도 .....”

“여보 선생님 말씀대로 합시다”

“안돼요. 우리 아기 우리 아기를 포기할 순 없어요. 어떻게 얻은 내 아긴데. 절대 그럴순 없어요. 차라리 제 목숨을 바치는게 나아요.”

어느 누구도 그녀의 모성본능을 꺾을 순 없었다.

“환자로서 자연분만은 자살행위입니다. 제왕절개를 할 수 밖에.... 의료진으로선 출산에 만전을 기할 수 밖에....”

제왕절개 수술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신생아의 울음소리가 병실안을 울리며 한생명이 태어났다. 하지만 한 생명을 얻는 댓가로 한 생명이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보호자는 눈물을 씻으며 보물인양 아이를 받아 안았다.

....... 불행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혜주가 스무살 들던 해, 아버지는 몸을 추스려 건축 공사장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불행히도 벽돌을 지고 공사장 건물의 철제 난간을 오르다 떨어져 세상을 하직했다. 사고를 수습하고 며칠 밤낮을 눈물로 지새고나니 정말 혜주는 세상에 홀로 덩그렇게 남은 혈혈 단신 고아가 된 것이다. .

“딩동 택배입니다”

“주문한 것도 없는데 택배라구요?”

납작한 포장을 뜯자 CD가 하나 나왔다. 컴퓨터 CD롬에 밀어넣자 젊은 여자의 얼굴과 음성이 재생되어 나왔다.

「혜주야 내가 네 엄마야……. 」

“내게도 엄마가 있었구나 우리 엄마가. 나를 이세상에 태어나게 하기 위해 세상에 가엾게도 자기 목숨까지도 버린……. 엄마아~~”

지유진 기자  yujinifjqm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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