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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쏠레미오

오 쏠레미오

 

“경난이 기집애 몰라보게 예뻐졌다. 얘”

“얘는, 너가 더 이쁘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거 아니니”

“너 손댔구나 또”

“응 아주 쬐끔”

언제나 여고 동창회는 옷자랑, 남편자랑, 성형자랑으로 시끌벅적하다가 오늘은 오솔레미오 선생님의 근황에 다들 귀를 쫑긋 세운다.

“오솔레미오 선생님 만나본 애 있니 빨리 자수해”

연순의 캐묻는 시선이 자못 형사처럼 날카롭다.

“나야 나. 너희들 몰래 나 혼자 살짝 만났어.”

종미가 혀를 날름하며 이실직고하자 다들 종미의 등을 다투어 때린다.

“그래 아무튼 그 샘 아직도 멋있대, 어땠어? 어땠어 빨리”

숨이라도 넘어갈듯 동창들이 다급하게 묻자 종미는 맥이 빠진 듯 대답한다.

“멋있긴 우리가 다들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거지. 만나뵈니 동네 할아버지에 지나지 않았어. 그래서 첫사랑을 만나면 실망이라고 ....”

M 여고는 주의 남녀 고등학교를 통틀어 여학생들의 기가 세기로 소문난 �교였다. 그런 M 여고에 남자 선생이 부임하면 기세고 터센 여학생들 등쌀에 몇 년을 쩔쩔매디기 전근을 가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런 M 여고를 완벽하게 평정하며, 오 쏠레미오 선생이 부임했다.

오 쏠레미오, 오세필 선생은 당대의 미남 배우 그레고리팩을 빼다박은 듯한 수려한 외모에 노래 한 곡 불러달라는 학생들의 이구동성에 몇 번 사양하다가 ‘오 쏠레미오’를 기가 막히게 불러 제꼈으니 여학생들의 가슴은 짝사랑으로 터질 만큼 부풀 수밖에 없었다.

체육선생이지만 음악은 물론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라는 시를 눈을 지그시 감고 암송할 때는 감수성 약한 여학생들이 한꺼번에 뒤로 넘어갈 지경이었다.

게다가 중소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흰 피부에 긴 머리, 기럭지까지 모든 조건이 백마 타고 온 왕자였다.

더구나 치렁치렁 무릎까지 덮는 검은 코트를 입고 이따금 수염이 텁수룩한 모습은 학생들이 연모해 마지않는 교과서 속의 시인 이상이 교실에 나타난 거나 다름이 없었으니 인기는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쉬는 시간’이면 우수에 젖은 눈길로 바깥을 내다보는 조각 같은 청년의 모습을 스케치하는 여학생들도 있었다.

여학생들은 다들 체육 시간을 기다렸다.

역시 꾀가 많은 종미가 한 수 위였다.

체육 시간이 왔다. 아래, 위 흰 츄리닝을 입은 오 쏠레미오 선생은 운동장 지휘대 위에서 열심히 재건체조를 시범 보였다.

“하낫 둘, 하낫 둘…” 하는 찰나 땡볕에 일사병을 견디지 못한 듯 종미가 풀썩 쓰러지고 아이들은 웅성거렸다.

“거기 무슨 일이야.”

오 쏠레미오의 물음에 아이들은 “종미가 쓰러졌어요.”

합창하듯 대답을 한다.

오 쏠레미오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멋있게(?) 달려와 한팔로 가볍게 종미를 안아 올려 안고는 바람같이 양호실로 뛰고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은 ‘우…….’ 하고 야유(?)를 보냈다.

그 사건 이후 체육 시간이면 쓰러지는 여학생이 속출했고 오 쏠레미오는 바람처럼 달려와 안고 양호실로 뛰기를 거듭해야 했다.

그때 숙자는 자신도 쓰러지는 행렬에 동참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눈을 지그시감고 오솔레미오의 품에 안기는 감미로운 상상을 하며…

하지만, 숙자가 연약하게 쓰러지는 모습을 연출하기에는 너무 튼튼한 다리와 몸통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예외없이 오 쏠레미오는 머리칼을 휘날리며 달려왔고 좀 버거워 보였지만 숙자를 들어 올리는 데까지는 일단 성공했다.

하지만, 걸음조차 떼지 못하는 망신살에 오 쏠레미오의 창백한 얼굴은 붉어졌고….

찰나 선생님 여기 현희도 쓰러졌어요. 하는 소리에 오 쏠레미오의 품에 안겨 눈을 지그시 감고 슬로비디오로 입술이 내려오는 상상을 하던 숙자를 털썩 내려놓고(내팽개치고) 현희를 향해 뛰는 오 쏠레미오를 배신감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숙자는 그 후 식음을 전폐(과자 정도는 생명유지를 위해 )하는 무언의 항변을 했다. 결국 오선생의 약혼녀가 학교를 찾아오면서 학생들의 단꿈은 깨고 말았지만.

오 쏠레미오 선생이 오늘 동창회에 나오시기로 했다 하니 흥분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얘들아, 선생님 오신다”

칠순의 노신사를 양쪽에서 부축하여 좌석에 모셨다. 선생님은 이미 기억 속의 백마 탄 왕자님은 아니었지만 존경심은 제자들 가슴에 넘쳐 흘렀다.

지유진 기자  yujinifjqm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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