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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와 아이들

“샘, 보고 계시나, 이 얼띠기, 쪼다, 반푼이들을… 어제 TV에 나온 광수와 아이들을. 광수와 아이들의 폭발적인!! 히히 가창력과 열광하는 청중들의 반응을. 샘도 이제 감히 이 광수를 보고 얼띠기, 쪼다라고는 모하시겠지. 샘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나를 보고 가수 이광수래.

샘이 주고 가신 샘의 각막으로 나무도 잘 보이고 풀도 선명하게 보여. 사실 나도 조금 걱정했거든, 술주정뱅이 우리 샘 각막 달면 술이 취해서 보이는 것도 거꾸로 엉망진창이면 어쩌나 걱정 많이 했거든. 근데 우리 샘 이제 저승에선 기특하게도‘ 차카게살자’ 문신 어깨에 새기고 술 딱 끊고 사람 됐나 봐. 근데 샘 생각하면 왜 자꾸만 눈물이 나지. 바보, 천치, 쪼다 우리 샘…”

 

“야 이시키들아 사흘에 피죽도 한 그릇 못 먹었어. 박자, 음정 하나 제대로 딱딱 못 맞춰…. 어랍쇼, 광수 넌 눈조차 티미한 놈이 악기를 다룰 수가 있나 싱어라도 하라고 붙여놨더니 지금 잠꼬대하냐, 잠꼬대해.”

재소자출신 부랑아들과 장애아들을 돌보는 별이 스무개쯤 되는 어깨 출신 정광태는 한때의 기타리스트로 뛴 경력을 되살려 보컬 그룹을 편성하고 피나는 육성에 들어간다. 날마다 트레이닝을 시키지만, 음악적 재능이 별로 없어 보이는 아이들로 꾸린 보컬이 제대로 작동하고 굴러갈 리 만무했다.

2년여의 피나는 훈련 끝에 그나마 재소자 위문잔치 에 내놓을만한 팀으로 육성하는 데는 성공했다. 드럼을 이젠 제법 후련하게 쳐내는 문호, 트럼펫, 비올라, 첼로, 북 등 악기들이 이젠 딱딱 호흡을 맞추는 가운데 싱어인 광수의 노래가 카랑카랑 물 만난 고기 같았다. 하지만, 시끄럽다고 주민들의 민원이 구청에 접수되고 항의시위라도 있는 날이면 광태는 윗통을 벗어부치고 고함고함, 문신을 새긴 등짝으로 드러누워 눈을 부라리며 배 째라식의 시위를 벌이니 겁먹은 사람들은 슬금슬금 뒷걸음을 쳤다.

하지만, 오래갈 수는 없었다. 월세가 밀려 명도를 요구하는 임대인의 소송에 반지하를 비워주고 더 외곽으로 나갈 수밖에. 어렵사리 근처의 폐가나 다름없는 집을 장판 새로 깔고 도배를 하여 거처를 마련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이번엔 밤마다 수도 없는 대리운전을 뛰어온 샘이 덜컥 쓰러지고 나니 아이들은 막막했다.

전부 10대의 미성년이니 만만한 알바자리도 별반 없고 시간제로 기만 원씩 벌어 산 입에 거미줄 정도는 면할 뿐이지만 간경화가 심해 복수가 차오르는 샘의 약값이며 댈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그런데도 알콜중독 상태인 샘은 날마다 술타령이고 술이 떨어지면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 술, 술 받아와. 이 시키들아. 술 안 받아와, 니들 죽고 싶어…” 술을 받아다 주면 병째로 들이키곤 또 주정질을 해댔다.

“광수, 너 눈도 안 보이는 시키가 노래도 제대로 못 하면 앞으로 손가락 빨래, 뭐 쳐묵고 살래. 너는 임마 혼자서 연습해도 되잖아. 야 안 꺼져. 노래하기 싫으면 어디가서 칵 뒈져. 내 앞에 얼씬거리지 말란 말야. 빙신시키…”

다들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고 샘은 갈수록 복수가 차올라 결국 정신이 혼미해 한밤중에 위태로운 지경이 되자 119를 불러 시내 종합병원 응급실을 향해 급박하게 달렸다. 3시가 넘어 검진 결과가 나왔다.

“말기예요. 사람이 이렇도록 어떻게 그냥 방치해 두었습니까? 간암입니다. 몇 달 남지 않았어요…”

담당의의 선고에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이미 자신의 상태를 알고 체념한 듯 샘은 병원 측에 각막기증 의사를 밝혔고 어떤 독지가가 기증한 각막이 있어 수술이 가능하단 말에 영문 모르는 광수는 수술을 성공리에 마쳤다. 회복이 되었지만, 광수가 눈을 뜨고 세상의 사물을 접한 날 샘은 먼 나라로 떠났다.

 

뒤늦게 샘의 각막 기증 사실을 알고 난 광수는 울며 샘의 뼛가루를 뿌린 야산으로 아이들과 같이 온 것이다.

광수와 아이들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샘 고맙습니다. 앞으로 저희 잘살게요. 샘의 뜻대로 열심히… 사고 안 치고요.”

핏볼테리어 일병 구하기

 

“야 핏볼테리어 이제 오네”

“요즘은 개도 넥타이에 양복이구만. 야 웃기잖냐. . 핏볼테리어 패션”

“근데 요즘 핏볼테리어가 시를 쓴다며?”

“개가 시를 쓰면 그야말로 개발새발이겠네. ㅎㅎㅎ”

낄낄낄, 가가대소, 왁자지껄 중학교 동창회 때마다 그냥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 없다. 오늘도 여전히 원치않아도 나는 화제의 중심이다. Y 중 동기회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중 한 갈래가 ‘핏볼테리어 일병 구하기’다.

요즘 아이들과 달리 60-70년대 시골아이들은 딱히 모여서 놀만 한 공통적인 유희꺼리가 부족했다. 그래서 정월 대보름이면 이웃동네 아이들끼리 가로놓인 개울 하나를 사이에 놓고 돌 팔매질을 하거나(실제 박을 깨는 아이들도 있었음) 걸핏하면 패싸움을 벌이기 일쑤.

이북의 김정은이 남침을 못하고 망설이는 이유가 남쪽의 중2가 무서워서라는데 당시 아이들도 사춘기 변성기를 맞으며 천둥에 개 뛰듯 좌충우돌, 소문난 사고뭉치들이었다.

걸핏하면 읍내에서 패싸움질이고 순경들이 출동해 잡혀가 반성문 쓰고는 부모님에게 멱살잡이로 풀려나도 사흘만 지나면 수시로 R포인트를 변경해가며 집단 난투극을 벌이기 일쑤였다. 싸우면서 큰다더니 여드름들이 뒤룩뒤룩 솟아나고 콧수염이 거뭇거뭇 돋아나는 나이였다.

평소 앙숙지간이던 두 마을 악동들 사이에 불가피하게 또 한판 붙을 일이 생겼다. 아니 만들어졌다. 일전에 앞서 어떤 아이는 헌 자전거의 체인을 빼서 휘휘 돌려대고 아침저녁 죄 없는 샌드백을 죽어라 두드리는가 하면 실제 사용하기나 할지 모르지만, 화약을 까서 우겨넣는 사제 총기까지 제작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결전의 날, 까까머리들이 시쳇말로 잇 사이로 침을 찍찍 뱉어대며 건방모드로 마주 섰다. 이윽고 발길질이 날고 주먹이 난무하고……. 다들 제 적이 누군가 점찍어 마구 뒤엉켰다.

하지만 나는 평소 시골아이답지 않게 흰 얼굴에 샌님처럼 조용하고 약한 몸집에 키도 작아서 스스로도 열패감에 사로잡힌, 공부 외엔 존재감마저 희미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가만히 있던 내가 제일 활약이 크고 덩치가 큰 녀석에게 무소처럼 돌진해 허벅다리를 꽉 물어버린 것이다.

“아 아파, 안 놔 이 XX’ ‘너 죽을래?”

전혀 예상 못한 기습에 덩치는 대추방망이 같은 주먹으로 아굴통과 콧중배기를 사정없이 내리치고 다리를 뿌리쳐도 한번 문 것은 목이 떨어져도 놓지 않는다는 핏볼테리어처럼 엉켜있는 희한한 광경에 기가 질려 싸움을 멈추고 뜯어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손바닥만한 동네에서 따돌려 무리에서 밀려나는 외로움에 비하면 육체적 고통쯤이야 내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중에 무용담을 털어놓는 동급생들의 말에 의하면 애를 얼마나 무식하게 두드려 팼는지 선지피가 입과 코에서 왈칵왈칵 쏟아져 나와 선혈이 낭자했고 저러다 애 죽이지 싶어 더럭 겁이 났다고 했다.

이러다간 정말 살인이라도 빚어질 것 같은 분위기에, 흥분했던 아이들도 찬물 끼얹은 듯 조용했다. 다들 뜯어말렸지만 한번 문 것은 절대 놓지 않는다는 핏볼처럼 죽어라 허벅지를 물고 있었다 했다. 물린 아이는 죽는다고 살 맞은 산돼지처럼 꽥꽥 비명을 질러대고 문 놈은 눈을 하얗게 까뒤집고 있고..... 그제야 우리 편의 대장(?)이 “야 그만 놔줘라.” 한마디 하자 씩 웃으며 이빨을 풀더라는 것이다. 그 꼴로 저녁 늦게 숨어들어가 집에서 뒤지게 혼나고 눈탱이는 방탱이에 입술은 당나발을 하고도 등교는 해야 했고..

이 사건은 존재감없었던 나를 교내의 일약 스타로 만들었고 B 중 16회생 동기회의 유래 되는 전설의 한 갈래로 당당히 자리매김시켰다. 지금 생각하면 오체불만족의 내 내면심리엔 아마도 무리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선 뭔 역할이든 해야 한다는 근성이 어릴 때부터 싹트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여겨질 때가 더러 있다.

만약 지금 내 허술한 몸을 보고 아내가 자식들이 아버지의 학창시절 별명이 핏볼테리어였다고 털어놓으면 믿어줄까. 아마 딸아이는 웃겨 죽겠다고 깔깔거리며 난리일 것이다. 동창들 외에는 나를 아는 그 누구도 아마 에이!.... 실소나 할 것이다. 아무리 설명해도 그럴싸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지유진 기자  yujinifjqm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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